태을주는 천지안의 막힌 것을 풀어주는 열쇠
 노영균 (대전 정화파동한의원)
 
 
 수행은 본연의 성(性)을 찾는 과정
 짐승인 동물에게는 오직 본능이 있을 뿐 자아(自我)라는 의식, 곧 아상(我相)이 없다고 합니다. 오직 본능대로 행동할 뿐이요 본능의 영성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독특하게 자아가 형성됩니다. 그런데 대다수는 자아에 맡겨진 자기의 정욕(情慾)을 이기지 못하고 마치 그물에 갇힌 것처럼 이 정(情)에 의해 막히고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푸는 열쇠도 실은 자아입니다.
 
 자아는 자기의 사(私)입니다.1) 바로 이 자기의 사(私)에 맡겨진 정(情)에 지배당하여 본연의 성(性)이 가리어지고 막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인 성(性)은 그자기의 사(私)에서 이탈된 적이 없으며 단지 자신이 잊고 있었을 뿐입니다.
 
 수행이란 기사(己私)를 지배하고 있는 자신의 주인(性)을 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성(性)이란 정(情)에 의해서는 막히고 물(物)에 의해서는 밝아진다고 합니다.2)
 
 불가는 깨달음을 견성(見性)이라고 표현합니다. 왜 성정(性情)이 서로 나뉘는 것인가. 그것은 인간 육체의 개별성 때문입니다. 이를 분별성이라고 하는데 이 분별은 개인이 나누어 가지게 된 것이고, 성(性)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있는 것입니다.
 
 정(情)이란 실은 성(性)의 울림입니다. 정(情)이 잘못이 아니고, 분별의 사정에 기울어지기 때문에 잘못이 초래되는 것입니다.
 
 
 수행의 바탕은 참회와 반성 기도
 사람은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오감에 의하여 의식(意識)이 인식되고 그것이 집대성되어 자아, 곧‘나’라는 주관적인 의식이 자리 잡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무의식이라는 심연에 깊이 자리하게 됩니다.
 
 이를 불가에서는 유식이론이라고 하는데, 도가에서는 9정(鼎)이라고 합니다. 불가에서는 무의식을 8식(識)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무의식을 제8아뢰야식, 종자식(種子識)이라 하여 부정모혈(父精母血)과 더불어 전생으로부터 유전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 무의식의 정화를 꾀하여 본래의 성(性)을 밝히는 것이 견성(見性)이요 깨달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性)은 제9의 자정식(自淨識)이라 하여 궁극의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도가의『성명규지』라는 책을 보면 윤진인 선생이 불가의 마음에 대한 이론을 5풍(風) 6파(波) 7랑(浪) 8해(海)로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즉 안이비설신의 오감이 작동하면 마치 바람이 일어나는 것과 같으며, 이 바람에 의하여 의식이라는 파도가 치게 되고 제7식이라는 거친 풍랑이 일고 급기야는 제8식이라는 심연의 바다에 저장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7랑(浪)이 바로 자아입니다. 그런데 자아는 자기의 생각대로 움직이지만 알고 보면 더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어떤 무의식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숨어져 있는 깊은 내면에 실은 한(恨)이 맺혀져 있습니다. 한(恨)이란 간(艮) 자에다가 심(心) 자를 한 것인데 바로 마음에 종자처럼 저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흔히 8아뢰야란 알라야(alaya)란 말에서 온 것인데, 이는 집착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마음에 원한이 서리면 마음의 깊은 심층을 지배합니다. 이 마음의 원한을 풀지 못하면 소위 해탈이 되지도 행복을 찾지도 못합니다.
 
 또한 원한의 원(寃)이란 남으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한 것입니다. 남에게 억울하게 당한 일과 또는 내가 저지른 잘못도 실은 내 마음의 심연에 사라지지 아니하고 존재합니다. 이들에 대해 모두 참회 반성하지 않으면 수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므로, 수행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다름아닌 참회와 반성 기도입니다.
 
 
 태을주는 나와 조상을 해원시켜 주는 주문
 태을주 수행을 하면 인체에 수기(水氣)가 돌면서 자기 마음의 심연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음의 뿌리가 모두 드러납니다. 맺혀 있는 자기 한(恨)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인데, 이때 자기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잘못에 대하여 참회와 반성을 하면 몸과 마음이 새로워지고 가벼워집니다.
 
 흔히 말하길 자아를 넘어서 신아(神我)로 가야한다고 합니다. 성(性)이란 신(神)의 소이연이요 소자출입니다. 신아가 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언제나 막히고 부자유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신아를 진아(眞我)라고 합니다. 자아는 소아(小我)이고 신아는 대아(大我)입니다. 예로부터‘소(小) 즉 색(塞)이요, 대(大) 즉 통(通)’이라 하였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불평(不平)에 의하여 탐욕과 이기심, 증오가 그 자아를 지배하고 남을 존중하지 못하고 해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 마음에는 원한이 맺히게 됩니다. 따라서 해원(解寃)을 하지 않으면 궁극의 깨달음의 자물쇠가 열리지 못합니다. 해원의 궁극은 자기 내면의 한(恨)을 푸는 일입니다.
 
 증산도의 태을주 수행은 수기(水氣)를 돌리어 뿌리를 찾는 수행이므로, 나만의 해원이 아니라 나의 뿌리인 내 조상 선령의 깊은 한도 풀어낼 수 있습니다. 또한 태을주 수행은 해원이 되면서 나의 몸에 있는 병마도 더불어 같이 풀어줍니다. 태을주는 천지안의 모든 막힌 것을 풀어주는 열쇠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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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아와 자기: 자기는 자신의 몸(己)이 된 것이다. 자기의 몸(己)이 체(體)가 되어 자아라는 아상이 생기니, 자아는 용(用)이 된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에고나 집착 등으로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자아로 여긴다. 주자의『근사록』에는 자아를 자사(自私) 또는 기사(己私)라고 했다.
 
 2) 과거부터 명현들(포박자, 주자)은 사물을 느끼면 정(情)이 흐르게 된다고 했다. 곧 물(物)을 접하면 지(知)가 발동하는데, 이는 만물일원으로 만물과 나는 하나의 성(性)으로 관통하기 때문으로 보았다. 격물치지라는 말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옛사람이 만물에서 나를 보았으므로 그토록 기뻐했다는 주자의 말도 있다. 불가에서도 그런 말이 있다.

ⓒ증산도 본부, 월간개벽 2008.07월호